"우리는 스승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신바람 나는 공동체를 살아가고, 지금 여기 우리의 하느님 체험을 쉬운 말로 풀어낸다."
바로 연구소의 <사명선언문>입니다. 이 사명선언에 따라 성찰은 깊고, 소통은 쉽고 넓게 하기 위해 연구소 식구들이 쓴 칼럼들을 모아 놓은 공간입니다. 때로는 따뜻한 격려로, 때로는 아프지만 약이 되는 비판으로 소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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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정보 2021.09.17.

이 글은 <가톨릭평론> 33호(2021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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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교사는 누구인가?

지난 5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서 '오래된 직무'를 통해 평신도 교리교사의 직무를 제정했다. 이 문서는 자의 교서로 제정되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먼저 안건을 제시해 발간되었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6월에는 교황청에서 새로운 '교리교육 지침'이 출판되었다. 이 새로운 지침서는 교리교사의 직무 및 사명 등 교리교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개론적이면서 매우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맥락이나 시기를 보아 이번 교황의 교서는 이 지침서의 연장선에 있다. 포괄적인 책이 출판된 이후 1년여 만에 교황의 발안으로 같은 주제의 교서가 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한 안건이라는 점을 상기해 준다.

그렇다면 이 교서에서 강조한 교리교사는 과연 교회 안에서 누구를 칭하는 것일까? 지침서에 의하면 교리교사란 좁은 의미에서는 본당에 소속되어 세례와 견진 등 7성사에 관한 예비신자 교리를 돕는 역할을 하기 위해 고용된 전문인력을 말한다. 그에 반해 넓은 의미의 교리교사는 모든 성직자를 비롯해 어린이 및 성인 예비신자의 교리 이해를 돕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부모, 대부모, 선생님 등 여러 사람이 포함될 수 있다. 어떤 의미의 교리교사든 이 교서는 교리교사 직무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성경, 신학, 교리교육학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 및 양성을 통해 신앙의 진리를 전달하는 자격을 받아야 함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오래된 직무' 8항) 다시 말해 성직자들을 비롯해 본당에 소속된 교리교사들은 전문성을 가진 직업군으로 인정받아야 하며, 부모나 대부모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신앙 이해에 영향을 주는 모든 사람 또한 교리의 전파에서 전문적 지식과 소명의식으로 임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교서는 평신도 교리교사 직무 수여 예식을 곧 발표할 것을 약속하며, 각 주교회의가 이 직무의 허용을 위한 필수 양성 과정과 규범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른 가장 적합한 형태를 고안하도록 권고한다.('오래된 직무' 9항) 교리교사 직무의 구체적 형태에 대한 지침 및 방안을 지역 현실에 따라, 각 지역 주교회의의 재량으로 규정하라고 권장한 것이다. 여기에는 교리교사 직무가 지역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평신도 사도직으로서 교리교사의 직무

필자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생활한 지 15년이 넘었다. 따라서 그동안 한국 교회의 발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그것에 대해 무지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그러나 나의 가톨릭 모태 신앙 경험에 기반해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한국에서 평신도 교리교사가 임금을 받고 전문가로 고용되어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쳤던 기억이 없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평신도 교리교사들은 모두 주일학교 봉사자들이었고, 예비신자 교리 및 여러 성사의 핵심 부분은 주로 사제와 수녀의 소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말해 최소한 나의 기억 속에서 교리의 이해나 신앙과 관련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성직자나 수도자였다. 그러나 이번 교서는 명확하게 교리교사가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신도 사도직을 포함한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한국의 상황과 비교할 때 캐나다에는 매우 다양한 평신도 사도직이 있다. 필자 또한 평신도로서 캐나다 해밀턴교구 워털루 지역의 교육국에 소속되어 가톨릭 학교 초등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신앙교육이나 피정지도를 업으로 삼고 있다. 이곳에서는 평신도가 신학이나 종교학으로 학위를 받고 교구청에 소속된 학교나 병원, 군대, 감옥 등 사회 시설 등 종교 및 신앙의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당연히 한국에도 많은 사람이 사회 곳곳에서 가톨릭 종교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대부분 사제나 수도자가 소임을 맡은 경우가 많아 평신도 중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뿐이다.

가톨릭교회에서 동서양의 온도차는 매우 극명하다. 한국과는 달리 북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성직자의 감소가 큰 문제로 인식되었다. 미국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에서 제공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4년 사이 약 50년을 기준으로 미국 내 수녀의 수가 72퍼센트 줄었고, 사제는 35퍼센트 줄었다.1) 신부 수녀의 큰 감소율로 미루어 교구청 소속 시설에서 어렵지 않게 종교인의 인력난을 예상할 수 있다. 흘러간 역사 속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마 지금의 씁쓸하기 그지없는 세태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럽 출신 정착민과 이민자들로 구성된 북미 가톨릭의 종교적 역할은 이들의 문화와 생활에 속속들이 배어 들어 서구 사회의 교육, 의료 및 여러 복지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성직자의 급감 현상으로 생겨난 교회 및 단체에 인력난의 문제가 생겨나고 교황청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2) 교서는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사목 계획을 수행할 성직자들이 부족하므로 교리교사들의 직무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오래된 직무' 4항) 성직자 부족 현상으로 인해 평신도 사도직이 새로운 형태의 가톨릭 전문인력 양성으로 권고되는 현실은 원인이 어찌되었든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그에 반해 한국의 상황은 북미와 확연히 다르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17년 사이 18년간 추이로 보아 사제의 수는 71.7퍼센트, 남성 수도자 27.5퍼센트, 여성 수도자 15.89퍼센트로 각각 증가했다.3) 미국의 분석 자료와 비교했을 때 더 짧은 기간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폭으로 상승했다. 또한 북미와 비교했을 때 한국은 종교 전문인력이 파견되어야 할 교구청 소속의 학교, 병원 같은 사회시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따라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실정에서 볼 때, 평신도 교리교사의 직무에 대한 교서는 많은 부분 주교 회의의 재량으로 한국의 맥락에 맞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크다.

평신도가 일으킨 교회의 전통

현재 한국 상황과는 간극이 크지만 평신도 사도직은 한국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는 큰 부분을 차지했다. 한국 교회는 초기 평신도의 사목활동으로 인해 가톨릭이 전파되고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는데, 성직자 없이 평신도만으로 거의 자생적으로 가르침을 받아들인 역사가 있다. 한국에 가톨릭이 최초로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17세기경 명나라에서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후 서학은 당시의 지식인 중심으로 퍼지게 되며, 성직자 없이 평신도로만 구성되어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다. 그러던 중 신자들이 깊어가는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궁금증으로 청나라에 있는 북경교구 주교에게 연락을 취함으로써, 이들의 존재가 교회에 알려진다. 이후 교황 레오 12세는 조선의 전교를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 맡기기로 하면서 프랑스 선교사가 파견되고 한국인 성직자가 양성되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나 평신도 신학자인 정하상 바오로 등이 이때 본격적으로 한국 가톨릭의 기반을 다졌다. 한국의 전교 사례는 대부분 가톨릭 전교가 해외 선교사의 유입으로 시작된 것과 비교했을 때, 평신도가 사목활동의 주축이 되어 오히려 선교사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던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역사가 증명해 주듯 평신도의 힘은 저력이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신앙을 다지고 기꺼이 한국 교회의 머릿돌이 되어준 이들이야말로 “성령의 활동에 순종하여 교회를 세우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친” 이들이다.('오래된 직무' 2항) 성령은 여러 은사를 통해서 때로는 직접적인 봉사나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직무로 언제나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래된 직무'라는 문서의 제목은 한국의 초기 그리스도교 상황에 대한 회고와 일맥상통하며, 사실 평신도 사도직은 새로운 형태의 직무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의 역사 속에 시시각각 필요한 곳으로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말씀을 따르는 직무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서는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중 평신도의 역할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고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 해석해 볼 때 전문인력의 결핍에 의한 필요가 아니더라도, 이 교서는 모두가 성령의 부르심 안에서 함께하며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하느님의 일꾼이자 자녀로 함께하는 사회가 우리에게 한 걸음 다가오는 반가운 신호로 읽힌다.

1) Michael Lipka, Pew Research Center, “U.S. nuns face shrinking numbers and tensions with the Vatican”
2) Claire Giangrave, Religion News Service, “Clergy shortage grows to more than 3k Catholics for every priest, Vatican data shows”
3) 박문수, '한국 천주교회 통계분석 18년간 추이(2000-2017)',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조희정

토론토대학교 세인트 마이클스 컬리지에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의 종교간 대화에 관한 박사논문 제출 과정 중에 있다. 현재 캐나다 해밀턴교구에서 초등학교 교육부 담당자로, 어린 학생들의 자유로움과 창의력에 감탄하며 매일 감사하며 살아간다.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