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승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신바람 나는 공동체를 살아가고, 지금 여기 우리의 하느님 체험을 쉬운 말로 풀어낸다."
바로 연구소의 <사명선언문>입니다. 이 사명선언에 따라 성찰은 깊고, 소통은 쉽고 넓게 하기 위해 연구소 식구들이 쓴 칼럼들을 모아 놓은 공간입니다. 때로는 따뜻한 격려로, 때로는 아프지만 약이 되는 비판으로 소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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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정보 2021.08.17.

이 글은 <가톨릭평론> 32호(2021년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내 교회의 근심과 상처와 약함은 또한 나의 약함이기도 하다.

― 토마시 할리크

 

말문을 열며

 

교회의 과거를 성찰하고 교회의 현재를 바라보며 교회의 미래를 염려하고 고민한다는 것은 교회조직이나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이나 교계제도의 미래를 염려한다는 게 아니다.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주교나 사제 등 성직자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제도나 기관이나 사업체의 몰락을 걱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수도원이나 수도회의 존폐를 염려하는 것도 아니다. 조직이나 기관이나 제도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고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교회의 미래를 질문한다는 것은 현재의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오도하거나 복음을 가로막는 현실을 묻는 일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교회의 미래에 대한 염려는 복음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요 실천이기에, 교회에 대한 성찰에는 그리스도교적 삶의 방식과 실천에 대한 물음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며, 이러한 삶의 방식의 무너짐과 재건에 대한 전망도 피할 수 없다.

 

현재 가톨릭 교계제도의 겉옷은 완전한 사회로 여겨졌던 로마제국의 꼴을 그대로 따른 것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사회나 완전한 교회란 존재했던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는 우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의 뿌리에 있는 것은 많은 경우 위선과 오남용된 권위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쇄신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저술을 하나 꼽으라면, 1997년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와 1999년 우리신학연구소가 개최한 심포지엄 결과물을 서공석, 정양모 두 신부가 엮어서 분도출판사에서 간행한 “한국 가톨릭교회 이대로 좋은가?” 1권과 2권을 들 수 있다. 두 차례의 심포지엄은 사목, 여성, 수도생활, 고해성사, 권위주의 등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 책 출간 후 사반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의 쇄신에 관한 논의와 신학은 거기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고, 오히려 퇴보한 느낌마저 든다. 과연 깊은 신학 없이,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신학적 논의 없이 성숙한 교회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의 삶과 영성이 제 길을 찾아 걸어가기 위해서는 건전하고 깊은 신학의 안내를 받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비판적 성찰작업을 이어가야 하고 논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회는 비판적인 신학적 논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구조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 아래 이 글을 쓴다. 교회의 현실과 미래를 묻는 일은 교회의 존망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이 물음은 복음의 행방을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교회는 더는 교회가 아닐 테지만 충분히 가능하며 한편으로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태이기도 하다.

 

사상의 자유

 

토마스 머튼은 수도원에 들어가기 몇 년 전 어느 날 서점에 들러 에티엔느 질송의 “중세 철학의 정신”을 구입하고 기차에서 책을 펼쳐 본다. 그는 교회가 그 책을 검열하고 인가한 표시를 보고 난 후 끔찍했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혐오감과 속았다는 느낌이 명치에 칼을 꽂은 것 같았다.” 지식인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교회 검열이 주는 혐오감을 상쇄할 정도로 머튼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으며 머튼은 그 책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그에게 검열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검열 문제는 수도원 입회 직전에도 그리고 입회 후에도 그를 괴롭혔고, 이 문제로 검열관이나 장상과도 계속 갈등을 겪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머튼을 좋아하고 뛰어난 영성가요 종교간 대화의 선구자로 칭송까지 하지만, 그가 검열로 겪은 고초와 갈등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다.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는 전반적으로 아주 강한 검열정책을 쓰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도 검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 사후검열이지 우리처럼 사전검열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 일단 저작물이 출간된 다음에 그 텍스트를 문제 삼는 경우는 더러 있어도 출간되기 전부터 검열을 통해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별로 없다. 오늘날 상식 수준에서 보더라도 검열은 사후든 사전이든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제도이지만, 사전검열은 말 그대로 어떤 저작물이 출간도 되기 전에 저자의 사상을 검증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사후검열도 사전검열 못지않게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저작물이 출간된다는 점에서 사전검열보다는 낫다고 하겠다. 사후검열을 통해서 제한을 받은 현대 신학자들을 보자면 놀라움과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냥 머리에 즉시 떠오르는 몇 사람만 꼽아도 티사 발라수리야, 레오나르두 보프, 자크 드퓌, 로저 헤이트, 앤소니 드멜로 등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그나마 진취적이고 선구적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한국 가톨릭계의 철학자나 신학자가 검열제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될 수 있기를 꽤 오래 기다렸다. 가능하면 권위 있는 학자나 사제가 나서서 제대로 된 물음을 던지길 바랐다. 그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 중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검열과 관련해서 진지하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철학자나 신학자나 사제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한국 가톨릭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철학자나 신학자가 쓰거나 번역하거나 편집한 모든 글이 반드시 검열을 통해서만 교회 출판계에서 출판되는 현실에서 과연 사상을 자유롭게 논할 수 있으며, 복음정신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검열을 통과한 철학과 검열을 통과한 신학, 검열을 통과한 복음정신이란 도대체 어떤 철학이며 어떤 신학이며 어떤 복음정신인가? 철학이란 지혜에 대한 사랑이고 신학이란 하느님에 대한 말이라고 한다. 자신의 안위를 계산하지 않고 목숨 걸고 시대의 전위에 서서 진리를 탐구하고 추구하는 사람을 한국 가톨릭의 철학자나 신학자들 중에서 찾는 것은 무모한 일인가? 그런데 철학의 비조랄 수 있는 소크라테스나 하느님의 말씀인 예 수는 정작 그런 일을 하다가 비참하게 죽지 않았나?

 

검열이 있는 한 민중의 신학과 해방의 신학은 발전하기 어렵다. 검열이 있는 곳에서는 교부들도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들의 역동적 활동과 전복적 사상은 교회권력에 순치되기 쉽다. 그리스도교의 수도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오리게네스와 에바그리우스도 이단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교도권은 하느님이 아니며 교도권의 판단은 틀릴 수 있다. 우리에게 간곡히 필요한 것은 피어리스의 말대로 “가난한 사람들의 교도권”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을 읽는 복음적 감수성이다.

 

교회가 모든 저작물을 검열하듯이, 성직자들 특히 고위 성직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검열했다면, 곧 가장 중요한 텍스트인 ‘자기 자신’을 면밀히 읽었다면 우리 교회의 모습이 훨씬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을 가져본다. 나는 검열을 통해 좋은 책이 출간되는 것보다 검열 없이 후진 책이 나올 수 있는 자유의 길을 선호한다. 검열된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그리스도교 전통과 민중체험, 그리고 가난

 

가톨릭교회는 성경과 전통을 계시의 두 원천으로 삼으며, 이 계시의 원천은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체험과 더불어 신학의 원천을 구성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과거로부터 전해진 그리스도교 전통과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체험을 자신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전통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재맥락화되어야 할 텍스트이다. 그래서 신학은 과거 그리스도교 전통을 낳았던 삶의 방식과 체험을 되돌아보고 그 의미들을 오늘 이곳에서 재현하려 노력한다.

 

가톨릭교회는 사도들로부터 내려온 신앙의 핵심 진리가 전통에 담겨 있으며, 교도직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고 가르친다. 교회의 전통이란 하느님의 계시가 보존되고 전달되는 일종의 통로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이 전통은 하나의 상수(常數)이긴 하지만, 고정된 것이 아니며 재해석되어야 할 텍스트다. 이 텍스트는 현재의 새로운 체험과 그 체험을 낳은 역사 문화적 맥락에 의해 해석된다. 그간 한국 가톨릭교회는 전통이라는 상수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우리의 체험과 우리가 처한 역사적 맥락을 교회전통과 연결짓는 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사도들로부터 유래해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신앙의 진리를 담은 전통 안에는 성서 외에도 교부전승이 큰 몫을 차지한다. 우리가 교부 문헌을 읽는 한 가지 이유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한국에서 교부 문헌은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신학자들조차도 재해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교부 문헌은 그 양도 방대하거니와 공부하기도 쉽지 않고 초심자인 경우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감도 잘 잡히지 않는 분야이기에 무엇보다도 친절한 안내와 해석이 필요하다.

 

교부들의 역동적 삶과 그들이 전해준 전승이 박물관의 유물처럼 인식된 데는 일차적으로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책임이 크다. 교리서는 공의회 문서들과 교황 회칙, 강론, 중세 문헌, 교부 문헌, 교회법전, 성경 등을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인용하기에 각 텍스트에 담긴 생명력을 오히려 가로막는 경우가 허다하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서공석, 1999 (표지 출처 = 분도출판사 홈페이지)

"새로워져야 합니다", 서공석, 1999 (표지 출처 = 분도출판사 홈페이지)

 

“(교리서를 보면)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이름만 붙여서 잔뜩 전시해 놓은 박물관 전시품들 사이를 걸어 다니는 사람의 답답함을 느끼게 만든다. 과거의 모든 것을 무작정 보전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전통이 아니라 하나의 괴물이 되고 만다.”(서공석, “새로워져야 합니다”, 분도출판사, 1999, 286쪽) 교리서에 인용된 교부문헌들은 교부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가깝게 가도록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읽는 이들의 부담감만 키움으로써 교부전승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문헌을 인용하고 교리서에 구겨 넣는다고 해서 누구나 받아들이는 진리로 둔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통과 괴물 사이에 진지한 해석이 없을 때, 그 둘은 아주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독자들에게 전혀 전통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전통에 반감이 들게 한다. 그러면서도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도권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 교리서는 일관성 없음을 일관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의 어원인 라틴어 ‘tradere’는 ‘전달하다’로도 ‘배신하다’로도 옮길 수 있다. 물려받은 전통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거나 배신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제프리 로빈슨, 최문희 옮김, “성 권력 교회”, 분도출판사, 2011, 86쪽)

 

교부전승이 박제된 유물처럼 여겨지게 된 데는 한국에 교부문헌을 소개하는 교부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나는 국내 소수 교부학자의 교부들에 대한 애정과 교부문헌을 국내에 전달하려고 애쓰는 눈물겹고 신실한 노력을 너무도 잘 안다. 그들은 아주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부문헌 번역과 교부들의 성경주해 번역 등 엄청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헌신적 애정이 없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다. 번역은 물론 기초적 학문작업이고 큰 의미를 지니며 불가피한 일이지만 교부학이 한국신학이 되기 위해서, 달리 말해 교부전승이 한국전승에 합류해 우리의 일부가 되려면 번역 이상의 작업이 필요하다. 교부들의 고단했던 삶과 진리를 향한 그들의 사상적 쟁투를 고려한다면 마땅히 교부학은 교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 이상을 이끌어내고 때로는 일부 교부들이 그랬듯이 교회 당국이나 세속사회와 마찰도 불사해야 할 학문이지만, 우리 눈에 비치는 교부학은 교회권력에 종사하는 측면이 훨씬 강한 듯하다. 교부들은 우리의 찬양을 받기 위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이 남긴 문헌은 교회의 권력과 제도에 기여하기 위한 게 아니다. 교부들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읽어야 하는 텍스트고, 우리의 해석을 통해 우리의 맥락에서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는 텍스트다. 교부들이 자기 시대에 보여주었던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사상과 실천을 어떻게 재맥락화할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 한 생명력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전혀 무관한 사회 문화 정치적 상황에서 유래한 전통이 지닌 ‘낯섦’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쉽지 않은 해석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비단 교부들과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성서나 성사, 전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이 해석적 작업을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따라 교회전통이 지닌 의미층이 달라질 것이다. 이 해석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아마도 우리의 민중체험(민중전통)일 것이다.

 

일찍이 아시아 해방신학자 알로이시우스 피어리스는 가난이야말로 하느님의 말씀이고 계시의 발원지라고 설파한 바 있다. 피어리스는 가난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시선으로 가난과 복음을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불교에게 배우고 불자들과 대화하면서 종교해방신학을 탄생시켰다. 그는 아시아의 대자연과 인민의 가난체험 속에서 그리스도교 전통을 다시 읽었고 거기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새롭게 발견했다.

 

한국의 민중전승이 꽃피워온 자리도 바로 가난이며, 1970, 80년대 태동한 한국적 신학의 자리도 가난이라고 할 수 있다. 서남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과 변선환과 유동식의 토착화신학 등은 가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우리의 민중전승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 신학자들이 서구신학을 받아쓰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성찰하고 해석하면서, 민중의 언어가 반영된 신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난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감수성은 또한 민중체험과 민중전승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기도 했다. 너의 가난과 아픔을 나의 일부로 감지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신학적 사유를 거기에 접목할 수 있었다. 가난과 고통의 한복판을 관통하며 누벼온 민중의 소리, 민중의 전통에 귀 기울였기에 가능한 신학이었다.

 

한국 가톨릭교회에도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삶을 나눈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가톨릭노동청년회와 가톨릭농민회,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 같은 단체를 비롯해 많은 여성과 남성이 자발적 가난과 불편함을 선택하고 음지에서 민중과 함께 투신했으며,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새로운 신학언어를 탄생시키지는 못했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대부분 사제였고 교회 안에 안락하게 머물러 있었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가난하지 않으니 부족함이 없었고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니 인민의 언어로 현실을 신학화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가톨릭교회의 특성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로마의 주교를 정점으로 하는 견고한 구조에다 특유의 사회교리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의 필요성이 덜 절박했는지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신학언어를 창출하기보다는 수입언어(예컨대 사회교리)에 더 많이 의존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와 인도, 스리랑카의 가톨릭교회 신학자들은 해방신학과 탈식민신학이나 공공신학이라는 언어를 내놓을 수 있었는데 우리는 왜 새로운 신학언어를 발생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신학자 개개인의 역량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신학자가 교회 안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기 어려운 구조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신학자의 역량’은 어떤 학문적 능력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계시를 읽는 감수성과 관련된 항목이겠다. 로마나 서구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가톨릭 신학자들, 대부분 사제였던 그들은 인민의 가난이나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기보다는 제도교회의 그늘 아래서 신학을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전통을 공부하고 돌아왔고 그 전통을 전달하는 데는 관심이 있었지만, 그 전통을 우리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려는 노력은 별반 기울이지 않았고 우리의 민중체험과 그 체험이 녹아든 민중전승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려받은 전통의 재해석과 민중체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새로운 신학언어를 발생시키지 못했으며 한국 가톨릭 고유의 신학학파도 생성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 가톨릭 신학계에도 신학을 소명으로 삼아 궁구한 극소수의 예외가 있긴 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 가톨릭 신학자들은 전혀 의미 있는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전통을 수용하지만 재해석하지 않는 게으름, 교회의 검열, 한국의 민중체험(가난)에 대한 무관심과 성찰 부족으로 꼽겠다.

 

교회 내 성추문

 

한국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문이 알려지고 n번방 사태가 터졌을 때 가톨릭 신학자들 중 누군가는 이에 대해 사려 깊은 신학적 성찰의 글을 써주기를 기대했다. 언론에 나와 의례적인 사과를 하는 것 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고, 앞으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매뉴얼 정도는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다. 교회 내 영적 권력자(성직자나 수도자) 등에 의해서 미성년자나 약자가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을 때, 또는 폭행을 당했을 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문건으로 남기고 교회법적으로, 일반 사회법적으로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지침 정도는 발표되기를 기대했다. 조금 더 기다려 볼 일이지만 현실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 내 성추문은 상당 부분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와 자료를 참조할 수밖에 없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n번방 사태가 터졌을 즈음에 다소 충격적인 가톨릭 관련 해외 뉴스가 돌았다. 하나는 실천적 영성가이자 라르쉬 공동체 설립자인 장 바니에의 성추행 조사 결과에 관한 것과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토리노 인근 보세에 에큐메니컬 수도 공동체를 설립했으며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자문위원이었던 엔조 비앙키가 권위 문제로 자기가 설립한 공동체를 떠나야 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장 바니에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쓴 책을 읽었고 카세트테이프로 그가 하는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라르쉬 공동체가 태동할 즈음에 장애인들을 수용했던 비참한 장소들에 대한 전언, 장애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서 감추어진 하느님을 읽어내고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던 영적 안목은 하느님이 함께 계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의 글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받았던 감동이 적지 않아서 젊은 시절 한때는 라르쉬 공동체에 들어가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장 바니에는 큰 인물로 다가왔고 그와 인터뷰했던 누군가의 표현처럼 나에게도 “살아 있는 성인에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보였다. 이 뛰어난 (또는 뛰어나게 보였던) 영성가는 6명의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했는데, 그의 성폭력은 성폭력을 저질러 고소당하고 퇴출당한 그의 영적 인도자 토마 필리프 신부의 성폭력 이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토마 필리프 신부가 했던 것처럼 장 바니에도 똑같이 신비주의 이론을 동원해 육체적 접촉을 정당화했다.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고 전형적인 사이비 교주의 모습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라르쉬 공동체의 즉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다. 공동체는 이 사안을 외부 독립 기관에 조사를 의뢰했고, 이와 별개로 자체 위원회도 구성해 조사 과정에 공정을 기했다. 결국 8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장 바니에와 토마 필리프 신부의 성추행 사실을 낱낱이 밝혀냈고,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성인처럼 추앙받던 공동체의 설립자가 악행을 저지르고 죽은 후 그 폐허 더미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애쓴 모습은 공동체가 여전히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으며, 성추문에 공동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교회도 충분히 참조할 만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엔조 비앙키의 경우 그저 권위 문제로 떠나야 했다는 말 외에 다른 소식을 접하지 못해서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지만, ‘권위’가 문제 되었다는 말에 가톨릭교회의 뿌리 깊은 적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엔조 비앙키 역시 장 바니에 못지않은 뛰어난 영성가로 알려져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가 설립한 보세 수도승 공동체에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렉시오디비나와 관련된 그의 책 두 권이 번역되어 있으며, 이 두 책은 여러 곳에서 찬사를 받았다.

 

장 바니에와 엔조 비앙키의 추락은 가톨릭교회의 아주 심각한 위기의 징후를 보여준다. 그들은 비범한 공동체 설립자요 아주 뛰어난 영성가로 알려진 만큼 충격파도 컸다. 내가 정말 힘들고 머리 둘 곳 없다고 느낄 때 찾아갈 수 있는 사람, 나의 가장 비참하고 가난한 부분을 판단하지 않고 품어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에게서 받은 학대와 그런 사람들의 추락은 사실 ‘충격’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성가의 추락은 중요한 무엇이 뿌리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단서다.

 

제프리 로빈슨이 쓰고 최문희가 번역해서 2011년 분도출판사에서 출간된 “성 권력 교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사제들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 가톨릭교회의 대응을 담당했던 전 시드니 대교구의 보좌주교가 쓴 책이다. 저자는 교회권력의 남용 문제를 광범위하게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성서와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하면서 각 장 끝에 묵상을 제공한다. 진지한 비판에서는 무엇이든 배울 게 있다. 성추행의 충격과 회복요건, 성윤리, 여성사제를 비롯해 교회권력 전반을 다룬 이 책은 사목신학 텍스트로서도 손색이 없다. 교회권력과 성추행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성찰과 비판을 보여주는 우리말 문헌이 별로 없는 현실에서, 특히 사목현장에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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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성역의 범죄" 예고편 영상 갈무리. (이미지 출처 = Netflix España 유튜브 채널)

 

가톨릭교회의 성추행과 관련해 눈여겨보아야 할 자료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이다. 잘 알려진 이 영화는 보스턴교구의 성범죄를 다뤄 퓰리처상을 받은 <보스턴 글로브>의 특종기사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영화다. 또 다른 영상 자료는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성범죄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성역의 범죄”다. 세계 4대 가톨릭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자행된 성범죄를 아주 자세히 다루었다. 주인공은 가톨릭에서 자랐고 독실한 신자였으며 장래 희망이 사제였던 아이였다. 그러나 성적 학대를 당한 후 자기 세상이 무너졌고 신념체계도 붕괴됐으며 인생의 본보기도 사라졌다. 중요한 상징이 무너진 가슴 속 그 폐허 속에서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많은 피해자들의 아픔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카탈루냐의 종교적 상징이면서 국가적 상징이기도 한 몬세라트를 다른 방향에서 읽게 되는 슬프고 불편한 영상이다. 가톨릭교회 성직자와 수도자라면 꼭 봐야 할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 몇 권의 훌륭한 도서가 더 있지만, 외국어로 되어 있어서 추천하지는 않겠다. 위에서 언급한 한 권의 책과 두 편의 영상만 보아도 교회 내 성범죄의 흐름을 대략 알 수 있다. 교회 내 성추행이 한국이라고 해서 다르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한국에서는 은폐가 훨씬 심하기 때문에 자료에 접근하기 어려울 뿐이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아일랜드의 가톨릭 사제 중 약 7퍼센트가 성범죄자라는 통계가 있다. 이는 비단 이 세 나라의 사제집단에만 해당되는 통계가 아니다. 문명사회 엘리트 집단의 성범죄율이 대략 이와 비슷하다. 특별히 대한민국의 사제와 수도자들만 고결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성은 우리의 이성과 합리성을 보란 듯이 비웃으며 우리를 전복한다.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 젠더와 성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전에는 신비와 경외감이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있었던 어떤 거룩한 체험, 무아의 경지와 황홀감과 열락을 폭력과 성을 통해 얻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n번방 사태로 대변되는 성문화는 일종의 타락한 종교성마저 띠고 있다. n번방 사태는 우리 문화의 패배고 한국 종교들의 패배다. 특히 하느님이 살덩어리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의 패배다. 우리는 이 패배를 인정해야 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도해야 한다.

 

나가면서: 누구나 알지만 모두에게서 외면받는 예수

 

지금까지 한국 가톨릭교회의 향방에 대해 논하면서 부족하지만 크게 세 가지를 언급했다. 첫째는 검열을 철폐해 사상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교 전통이 민중체험을 만나 우리의 맥락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성추문 사태를 철저히 반성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사안들은 부차적일 수 있고, 더 시급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세 가지 문제의 배경에 교회의 권위주의가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부정적으로 작동하는 교도권의 권위주의가 철저히 재고되지 않는 한 교회의 미래는 전혀 희망적이지 않을 것이고 복음적 실천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어떤 사태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응답을 추구할 때 우리는 당연히 예수의 삶과 실천을 고려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문제와 교회 교도권의 권위주의를 성찰하기 위한 방안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예수를 다시 환기하며 맺음말에 대신한다.

 

예수가 우리를 위해 해준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주지 않았고, 질병을 제거해주지도 않았으며, 배고픔을 없애주지도 않았다. 예수가 희망한 공동체나 사회는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고 작은 것이었다. 하느님의 다스림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정복하고 억압하는 제국이 아니라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다스림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죄인들, 쫓겨난 이들, 갈릴래아의 비천한 이들한테서 솟아오는 것이다. 예수에게서 세상을 바꿔보리라는 야욕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자기 삶을 아버지 뜻에 따라 맞추려고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인간을 위해 철저히 사랑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그는 하느님을 “아빠”라고 불렀다. 예수가 이 세상에 가져왔던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인격적 체험이었고, 이 체험은 하느님이 이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체험이었다. 예수는 하느님을 너무도 가까이 체험했기에 그를 아빠라고 불렀다. 예수가 체험한 하느님은 예수 생명의 기원이었고, ‘아빠’는 고통스러운 현세와 대조적인 ‘선하신 하느님’ 체험에 대한 표현이었다.

 

예수시대의 유다는 억압받는 나라였고 정의와 평화가 부재하던 불의의 시대, 노예제도가 성행하던 시기였다. 율법은 억압상황을 옹호하는 데에 이용당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예식과 사제들을 위해서 세금을 내고, 로마인들에게도 공물을 바치는 이중과세제도로 인해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예수는 이처럼 고통스러운 인간의 역사 한가운데서 살면서도 악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고 선을 이끄시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예수는 인간을 소중히 여기시고 자유롭게 하는 힘으로서의 하느님, ‘아빠’를 체험했고, 아빠 체험에서 우리 세계의 역사로부터 이끌어낼 수 없는 희망의 메시지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E. Schillebeeckx, JESUS-An Experiment in Christology, New York: Crossroad, 1979, p.268.)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설교하고 그 나라가 지금 여기 역사 한가운데서 인간을 해방시키리라고 확신한 것은 그의 종교적 체험, 고통의 역사와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대조된 현실에 대한 체험에서 유래했다.(E. 스킬레벡스,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의 자유’, “신학전망” 29호, 광주가톨릭대학교, 1975, 109쪽.) 예수는 전통에 충실했고 동시에 자유로웠다. 그의 율법해석은 새로운 것이었으나 과거와의 연결 속에서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율법 자체보다 율법이 적용되었던 방식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예수의 율법해석의 근거는 하느님의 자비였다. 그는 거룩함과 순수함이라는 옷을 입고 하느님의 베푸심을 가로막는 율법해석을 거슬러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불결한 사람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놀았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는 않았습니다.”(“200주년 신약성서”, 마르 2,27) 그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공간으로 일상생활을 중요시했다.(서공석, ‘하느님에 대한 말’, “종교신학연구” 6집, 분도출판사, 1993, 320쪽)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선호를 드러냈다.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자신들이 받아들여졌음을 알았고, 이를 통해 그들은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리고 있음을 체험했다. 예수에게 “실천한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G. 로핑크, 정한교 옮김,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분도출판사, 1985, 100쪽. “예수의 가르침에 있어서 실행이라는 주제는 공관 전승의 모든 출전 계층에서 놀라우리만큼 요지부동하게 일관되어 있다.”) 예수의 관심사는 언제나 구체적인 실천에 있었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내게는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마르 3,35)

 

예수는 몰아적인 사랑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예수의 실천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비유였던 것이다.(E. 스킬레벡스, 앞의 글, 108쪽.)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와 실행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의 죽음은 정의롭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메시지와 사랑의 실천행위가 만나는 역사적 귀결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삶과 실천으로 말미암은 죽음이 필연적임을 인식했고, 하느님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나 하느님을 신뢰함으로써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까이 계시면서도 자신을 감추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신앙의 밤과 시련을 깊이 체험해야 했다.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발생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사랑의 실천행위가 무조건적이어야 함을 시사하는 표징이었다. 그는 성부로부터 받은 소명에 자유롭고 충실했으며, 인간들을 끝없이 사랑했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철저히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의 죽음은 철저한 사랑의 내적 귀결이었고, 거역할 수 없는 선(善)의 힘이 보여준 결과였다. 예수는 하느님의 함께 계심을 철저히 살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실패로 나타났다.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엄청난 실망과 비극이었다. 십자가 앞에 서 있던 많은 사람은 예수를 비웃고 조롱했다. 그의 죽음에 앞서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제자들의 희망은 종말에 이르렀다. “하느님 나라는 도래하지 않았고 예수는 자기보다 앞서 있었던 숱한 의인들과 예언자들처럼 결정적으로 제거되었다.”(뒤꼭, 문세화·박영식 옮김, “예수는 자유의 몸이시다”, 분도출판사, 1976, 72쪽.) 십자가는 철저한 실패였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으로 제자 공동체도 없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또한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 세우지 못한 자신의 실패를 시인해야 했다. 예수로부터는 어떤 종류의 패권주의도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는 순간까지 아버지께 충실했다. 하느님의 함께 계심이 확인 불가능하고,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없었던 순간에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아빠 아버지”라는 부르짖음뿐이었다. 예수는 침대에서 죽지 않았다. 그는 십자가에서 하느님을 부르며 죽었다.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과 다른 이유는 그의 삶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뜻이 인간 이해의 경계 너머에 있음을 보여주는 표징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헌신한 사람의 종말은 비극이었다.

 

예수의 실천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실천은 절대타자이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타자의 상황과 무관하게 타자에게 헌신할 것을 요구한다. 종교적 가치는 많은 경우에 세속적 가치와는 다른 역구조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삶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뿐만이 아니라 그 신학에도 신산한 시험으로 나타난다. “지상에서 인간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모든 것 밑바닥에 있는 창조의 공포, 공황의 소리에 대한 공포라는 살아 있는 진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이다.”(Ernest Becker, The Denial of Death, New York, the Free Press, 1973, p.94)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그 본질에서 신학을 죽이는 일이다. 참으로 위기에 처한 것은 우리 인간성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Lucien Richard, What Are They Saying About the Theology of Suffering?, Paulistpress, 1992, p.122.)

 

우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전례없이 외치면서 살아가지만 실제로 세상은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 과학기술 문명의 혜택으로 인간은 인간이 조작한 것의 홍수 안에서 살아가면서 모두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양 살아간다. 신실한 신앙인이나 종교인이라고 해서 신부재(神不在)의 체험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현대의 영적 체험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의 부재를 사는 것이다.”(C. Geffre, Le Christianisme au risque de l’interpretation, Paris, 1983, p.229. 서공석, “새로워져야 합니다”, 분도출판사, 1999, 229쪽에서 재인용.)

 

예수 운동이 예수와 민중이 함께했던 운동이라고 해도 예수 홀로 겪어야만 했던 신앙의 어둔 밤이 있다. 이 밤에 제자들은 도망갔고 예수는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그러니 예수의 제자라면 누구든 예수를 따라 예수처럼 홀로 이 밤을 겪어야 하거나 겪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이 제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하지 않았는가.

 

 

강창헌

 

신앙인아카데미에서 10여 년간 일했고, 지금은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이다.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