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승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신바람 나는 공동체를 살아가고, 지금 여기 우리의 하느님 체험을 쉬운 말로 풀어낸다."
바로 연구소의 <사명선언문>입니다. 이 사명선언에 따라 성찰은 깊고, 소통은 쉽고 넓게 하기 위해 연구소 식구들이 쓴 칼럼들을 모아 놓은 공간입니다. 때로는 따뜻한 격려로, 때로는 아프지만 약이 되는 비판으로 소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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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정보 33호 [2021년 가을]

예술의 기원과 희생제의

인류에게 예술의 기원을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후기 구석기 시대에 사냥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동굴벽화의 창작 동기에 대해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1897-1962)는 그런 주술적 의도가 아닌 “동물의 살해가 생명의 종교적 모호성을 드러내는 순간, 고뇌의 인간이 경이로운 극복을 통해 생명을 완수하는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목적에서 그린 그림”이라 말한다.1) 이어 모호하게 다루었던 동굴벽화의 ‘우물 장면’을 이후에 ‘살해와 속죄’라는 언어로 정리한다. 즉 동물 살해의 금기를 어긴 인간이 자신이 살해한 동물 옆에서 죽은 동물과 유사한 것이 되려고 모방함으로서 ‘살해와 속죄’를 수행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또한 <도퀴망>(Documents)이라는 잡지에서 그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종교적 이야기를 모든 인류와 교감을 위한 신의 자기 희생”으로 기술한다.2) 여기서 말하는 종교와 예술의 자기 희생이라는 면모는 곧 타자들과의 교감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자 하는 소통의 근본적인 행위로 희생제의와 관련된다.

그런 면에서 ‘서소문 밖 네거리’라는 장소, 대한민국에서 이곳만큼 수많은 희생제의를 거쳐 애환이 서린 장소도 아마 없을 것이다. 서울역 주변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에 있는 조그마한 서소문 역사공원, 이곳은 바로 국사범으로 몰린 사회 개혁 세력의 처형장이었고 신유박해(1801), 병인박해(1866) 같은 천주교 박해의 장소였기에 희생의 장소이자 소통의 장소가 된다. 더욱이 앞서 말한 예술의 기원이 희생제의를 통한 소통의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때, 지상에는 현대인들의 쉼터가 되는 공원이 있고 지하에는 역사박물관으로 지어진 건축 구조는 종교와 예술이 갖는 소통의 의미를 말해 주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내부 구조와 전시는 어떠할까?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평화와 위로의 공간

이곳의 건축구조는 평지에서 위로 올라가는 다른 건물과 달리 역사박물관에 들어서려면 가장 먼저 경사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빛의 광장’에 진입해 죄인의 목을 옥죄는 형틀 조각상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아! 여기가 바로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외치다 희생당한 사람들의 넋이 숨쉬는 곳이구나’ 하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로비와 뮤지엄숍을 지나 지하 2층으로 가면 기획 전시실과 상설 전시실이 나오고, 지하 3층으로 가면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광장, 하늘길이 나온다.

‘콘솔레이션’이란 ‘위안’이나 ‘위로’를 뜻하는 말이니 봉건사회에서 자유를 외치다 목숨을 다한 이들을 위로하고, 방문자들에게는 평화와 안식을 주고자 하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겸재 정선'(6분), '스테인드글라스'(6분 20초), '레퀴엠을 위한 영상'(14분) 같은 미디어 아트 영상에 의해 어둠 속에 빛으로 드러나는 콘솔레이션홀은 그 자체가 공간이기 전에 하나의 전시물이 되고 있었다. 콘솔레이션홀 반대편에 있는 하늘광장, 건물에서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해야 할 하늘광장은 특이하게도 지하 3층에 있다. 하늘광장의 주변을 붉은 벽돌이 높게 둘러싼 덕분에 도심의 요란한 마천루는 보이지 않고 오직 시야에 들어오는 건 하늘뿐이다.

조선 후기 사상의 전환기적 특성과 역사성

현재 상설 전시관 제1전시실에는 ‘조선 후기 사상계의 전환기적 특성’을 다루었으며, 제2전시실에는 서소문 밖 역사적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한 시대를 관통했던 성리학의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상을 꿈꾸었던 선각자들을 상설 전시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조선 전기, 왕조의 건립과 통치의 이념이 되었던 성리학은 임진 병자의 양란을 거치면서 의리와 명분이 극에 달해 이에 대한 반성과 저항이 대두된다. 이러한 조선 후기 사회 경제적 변동 속에 대안으로 떠오른 실학사상가로는 중농학파인 다산 정약용과 중상학파인 연암 박지원을 대표로 꼽을 수 있겠다. 아쉽게도 전시장에서는 이익과 정약용의 저서 몇 권만을 볼 수 있었기에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수록된 '허생전', '호질' 그 외 '양반전', '민옹전', '예덕선생전' 등을 통해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사상을 만나보기를 권한다.3)

성리학적 가치에 대한 도전은 이상향의 도래나 구원을 기대하는 강한 특성으로 나타나 "정감록" 같은 예언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천주교 사상을 포함한 서학에 관심을 가졌던 대표적인 선각자다. 노론의 정치 공세를 받고 강진 등지에서 18년간 긴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은 사회개혁서인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같은 저서를 남긴다. 전시실에 아카이빙된 한 땀 한 땀 써내려간 글들은 그야말로 백성을 사랑한 목민관의 귀감을 넘어 백성의 희생제의에 동참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1803년 어느 백성이 자신의 양근을 끊은 것을 슬퍼하며 지은 한시 '애절양'은 당시 심각한 군정의 횡포를 노래한 다산의 대표적인 사회시로 "목민심서"에 시를 쓴 동기가 실려 있으니, 백성의 희생과 고통에 동참하고 이를 함께 느끼는 소통의 행위가 한시라는 형식으로 드러난 셈이다.4)

그야말로 가렴주구의 조선 후기 양반사회에서 민란을 비롯해 동학농민혁명 등 당시 사회변혁을 위해 저항한 수많은 이가 이곳 서소문 네거리에서 참형을 당하는데, 제2전시실에는 동학 관련 사료로 '동학도 포고문'과 '폐정개혁안' 등이 아카이빙 되어 있다. 이렇게 조선 후기 서소문에는 봉건체제에 반대하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아 치열하고도 처절하게 순교를 맞이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스스로 몸을 던진 이들과 관련된 감옥과 처형장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이곳에는 그들의 희생제의에 동참하는 종교와 예술이 있다.

현대 불교 미술전-공(空)

특별기획전으로 마련된 '현대 불교 미술전-공空'(2021.4.12.-6.30)은 종교의 보편적 진리 속에서의 성찰을 위한 행사로 국내 최대 불화인 국보 제301호 화엄사 영산회괘불(높이 12.08미터, 폭 7.69미터)을 전시했다. 그리고 불교의 사상을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사운드 등의 매체로 표현한 현대미술 작가 13인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중심 개념은 ‘공(空)’이다. ‘번뇌의 물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이자 ‘세상의 참 모습’으로 알려진 ‘공’을 풀어 보자면, 사물은 항시 변하고 연기(緣起)해 그 자체의 본성이나 자기 동일성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생기는 것으로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기에 늘 불확실한 상태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정박하지 않는 삶, 구속이나 얽매임 없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에 대한 ‘공’ 전시가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외친 이들의 외로운 투쟁의 장소에서 펼쳐진다는 것은 이들의 희생제의에 동참함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에 대한 소통의 행위라 하겠다.


(그림 1) 'Angel-Soldier', 2011, Single channel HD Film.(23분 14초)

 

'Angel-Soldier'(천사-병사)는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체를 단독 전시로 사용했던 미디어 아티스트 이용백 작가를 전 세계에 알린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5) 한국의 분단 현실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화려한 인조 꽃밭에서 꽃으로 위장하고 전진하는 군인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그 속에 숲속의 새소리를 담아 설치 미술과 퍼포먼스(행위예술)를 변용한 멀티미디어 예술작품이다. 자연의 소리를 배경으로 꽃이 만발한 풍경을 담은 영상 퍼포먼스를 언뜻 보면 정지된 사진 같지만(그림 1)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꽃 그림이 착시 현상으로 분리되어 전경에는 3D의 입체 꽃이, 뒤에는 가면을 쓴 병사가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이 시나브로 드러난다.(그림 2) 총을 든 전사 6명이 꽃으로 위장한 채 서서히 이동하는 이 공간에서 총은 본래 기능을 상실한 장식품에 불과하다. 군인과 총, 꽃과 새라는 이질적 동거는 전쟁의 긴장감을 무장해제하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영상작업을 위한 비디오에서 쓰인 꽃무늬 위장 군복과 헬멧, 이들은 시뮬레이션 시대에 예술적 창조의 개념에 대한 변모로도 읽히는데, 현대예술이 가상공간에서 무수한 복제와 편집, 변형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매우 가변적인 산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즉 예술가는 자기 동일성이나 그 자체의 본성을 가진 ‘기원적 창조’를 하기보다는 복제물의 차용과 재구성을 통한 시뮬레이션 형식으로 말할 수도 있다.


(그림 2) 꽃무늬 군복으로 위장한 군인들의 가면을 쓰고 있는 장면 이미지. ©designboom


이용백 작가의 또 다른 전시 작품은 피에타 3부 연작 중 하나인 '피에타: 자기증오'다. 거푸집에서 나온 마네킹 틀이 자신의 모태인데, 그 알맹이인 자신이 거푸집에 폭력을 가하는 형상이다.(사진 1) 죽음과 함께 떠나기 전의 마지막 행동으로서 자기파괴 행위는 곧 사랑에서 죽음으로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하기에 자신을 만들었던 틀만을 파괴한다.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이용백 작가의 '피에타' 연작은 이미 정치적 논평이 결합된 작품으로 포즈를 취한 2명의 주조형 인물이 짝이 되어 사랑과 증오와 죽음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룬다. '피에타' 자체가 가진 의미는 미켈란젤로(1475-1564)의 원작을 포함해 종교적 이미지를 연상하는데, 자연과 신성이 뒤섞인 세계에서 자연의 부정으로 형성된 인간이 스스로를 한 번 더 부정하는 방식으로도 보인다.


(사진 1) '피에타: 자기증오'(2014), FRP, 340×335×168(h).


그러나 제2의 부정은 인간 세계를 처음으로 되돌리는 대신 초월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서두에 말한 동굴벽화에서의 종교와 제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에 전시된 이용백 작가의 'Angel-Soldier'에서 ‘꽃’ 역시 아름다움을 의미하지만, 곧 시들고 마는 메멘토모리-‘죽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피에타: 자기증오'와 함께 죽음과 희생을 모티브로 하는 두 작품이 필자에게는 소통과 교감의 가능성을 이루는 행위로 예술과 종교의 희생제의와 관련이 깊어 보이기에 이번 전시의 대표로 꼽는다.

다시 서소문, 공공적 가치와 희생제의의 실천

서소문 밖에서는 어제와 오늘이 공존한다. 형장 대신 현양탑이 세워진 그곳에는 로마제국의 식민지 팔레스타인의 예수의 희생, 그리고 조선의 민란과 동학, 천주교 박해뿐만 아니라 억압과 구속, 혐오와 차별을 자행하는 것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희생과 제의가 공존한다. 그리고 희생과 제의는 곧 소통과 교감의 장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박물관은 최근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있다.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어 온 전근대적 노정을 반성하고, 동시대의 사회적 이슈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다양한 가치를 보호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특히 역사박물관은 운영 주체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이지만 ‘서소문 네거리’가 가진 의미와 공공성을 고려할 때, 종교를 초월해 조선 후기 역사와 문화의 체험을 실천하는 기관으로서 수용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조성사업 과정에서부터 “천주교 순교성지화”라는 비판과 특정 종교(천주교) 유적 사업이라는 지적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6) "한국 가톨릭 대사전"의 '서소문 밖' 항목에 따르면 한국의 103위 성인 중 44명이 이곳에서 순교해 최대 순교지임은 확실하나, 필자가 보기에 조선 후기 사상사를 주제로 한 전시 아카이빙 자료의 대부분이 천주교 관련 사료로 편중되어 전문 박물관으로서 균형이 어긋나 보이는 점은 아쉽다.

역사 기념 공간으로 재편한 이곳이 현재의 공공적 가치가 발휘될 수 있도록 변화를 수용하는 것만이 박해의 장소로서 희생제의를 실천하는 일이 될 것이다.

 




1) 조르주 바타유, 차지연 옮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마네", 워크룸 프레스, 2017 참조.
2) Georges Bataille, trans. Allan Stoekl, “Sacrificial Mutilation and the Severed Ear of Vincent Van Gogh”, Visions of Excess(University Of M innesota Press, 1985), pp.61-72. 여기서 절단과 희생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해방시키고 개인의 습관적인 동질성을 단절시키는 힘을 가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의 졸고 '조르주 바타유의 관점에서 본 비정형과 불가능의 미학', <미술이론과 현장> 31(2021), 111-138쪽 참조.
3) 1780년(정조 4) 연암 박지원은 종형을 따라 청나라 건륭제(고종)의 칠순연에 참석하는 사신의 일원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중국 연경(燕京)을 지나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지인 열하(熱河)까지 기행한 기록을 담았는데 연암이 남긴 "열하일기"는 당시 보수파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나, 그곳 실학사상의 소개로 수많은 조선 시대 연경 기행문학의 정수로 꼽힌다.(충남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연암 수택본 26권)
4) '애절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그칠 줄 모르고 /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청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정벌 나간 남편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예부터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 보지 못했네.”
5) 2011년 6월 4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한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대표 작가로 단독 참가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세계 3대 비엔날레의 하나인 베니스비엔날레는 글로벌 작가로 도약하는 주요 관문이다.
6) 김수나, '서소문역사공원 종교 편향 논란 계속',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9.6.17. 참조.

 


김연희

예술학 박사(미술비평). 주요 논문으로 '조르주 바타유의 관점으로 본 비정형(Formless)과 불가능의 미학',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과 지연된 사후 작용', '차용의 관점에서 본 ‘포스트프로덕션’' 등이 있다.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