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우리작은책 깨물지 못한 혀 - 한국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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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간하는 ≪우리작은책≫은 김유철 우리신학연구소 회원이 쓴 "깨물지 못한 혀 - 한국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언론"입니다. "깨물지 못한 혀 - 한국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언론"은 지난 해 발간한 첫 번째 '우리작은책'의 후원계좌에 입금된 후원금으로 출판되었습니다.

…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민족의 삶을 흔들었던 일제와 거기에 별별 구실이 담긴 '협조와 순응'이 21세기 초반까지도 정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단순한 그 당시의 친일이 비극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그런 논리가 전개됨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비극인 것이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그 당시의 일과 더불어 '지금 · 여기'를 고백하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현실 정치권력과 어떻게 하는 것을, '욕됨'이라 부르는지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런 욕됨은 교회가 아무리 부인하고 귀 막아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는 아니라고 교회가 상상하고, 다짐하고, 희망하지만 그런 일의 핵심적인 자리에 교회언론이 자리매김해야 한다.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과 예언자적인 눈과 입으로 바른 길을 비추는 '등불'의 역할을 교회언론은 거듭거듭 새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한국은 '등불'보다 '촛불'이 더 밝다. … (본문 중에서)
목차

1부 2008년 4월 29일 한국천주교회는 억울하다?

1.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이렇게 말했다
2.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렇게 말했다
3. 가톨릭계 교회신문들은 이렇게 말했다
3-1. 평화신문
3-2. 가톨릭신문 .
4. 나는 이렇게 말했다
4-1. '교회'는 친일했지만 '개인'은 친일하지 않았다 .
4-2. '다카키 마사오'는 대통령이 되고 '오카모토'는 주교가 되었다
4-3. 그런 변명을 하자면 '을사오적'도 할 말이 있다
4-4. 교회의 친일문제는 교회언론이 풀어야 한다

2부 한국천주교회 공식 기관지의 받아쓰기

1. 경향잡지는 어떤 간행물인가?
2. 1911년부터 다시 보기

3부 일제강점기의 한국천주교회 이슈 자료 다시보기

1. 프랑스 선교사들의 관점
2. 아! 안중근
3. 3 · 1운동에 천주교 신자들의 참여율이 저조했던 이유
4. 종교법인
5. 신사참배에 대하여
6. 순교와 황국신민
7.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연맹과 국민총력 천주교 경성교구 연맹
8. <경향잡지> 외 일제하 천주교계 언론
9. 반가웠지만 예상치 못했던 조국해방 직후
10. 없어진 자료들 그리고 교구사

4부 가야 할 길

1. 역사는 반복된다
2. 동네북 교회언론
3. 다시 7인을 생각한다
4. 일본천주교회의 고백과 사죄
5. 21세기의 문을 열며 교회는 이렇게 용서를 청했다

저자소개 : 김유철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과 경남도민일보,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경남작가회의, 경남가톨릭문인협회, 생명평화결사에서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고 있다. <가톨릭마산>,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 <공동선>, <지금여기> 등에 졸고를 싣고 있다.
감사의 말 : 호인수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
"아픈 마음으로 아프게 썼습니다." 김유철 선생이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책을 내겠다고 보내온 선생의 원고를 읽던 참이라 좋은 글 잘 썼다고 인사를 건네자 대뜸 돌아온 메아리였습니다. 아픈 마음으로 아프게 쓴 글. 그렇습니다. 저자와 함께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선생의 글은 단순히 지나간 한국교회의 대표적 인물들의 친일행각과 그것을 옹호 찬양하던 교회 언론에 대한 분노와 비판을 넘어, 지금여기 교회의 일원이며 교회 자체인 나라도 충분히 그랬을 거라는 솔직한 자성과 자책이기 때문입니다. 네 이야기가 남이 아닌 내 이야기, 곧 우리 교회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며 삽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을 반복하며 삽니다. 그러면서 염치없이 일곱 번씩 일흔 번을 빌고 또 빌며 삽니다. 빌 때마다 용서하라는 게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사람인 교회는 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감추고, 덮고, 구차하게 변명하려 할까요? 용서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참회와 고백은 개과천선의 의지가 전제되고 눈에 보이는 개선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김유철 선생은 그래서 지난 2000년에 한국 주교단이 공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만천하에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변명하려 드는 까닭은 무엇이냐고 아프게 묻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픈 가슴 쓸어내리며 우리에게 '내 탓이오'를 하게 해주셔서요. 우리신학연구소를 통해서 다시 한번 잔잔한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 저 피안에까지 이르게 해주셔서요. 제도교회의 철옹성은 보기보다 높고 단단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우리가 모여 이룬 사랑하는 교회공동체의 새로운 삶의 기운이 한반도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미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